박성훈 베이징특파원 ‘강철동맹을 외치는 한·미 정상을 지켜본 중국의 불안감은 흉기 같은 거친 언사로 뿜어져 나왔다.
한 번도 대면한 적은 없으나 러시아 문학의 동지 한 사람을 먼저 보낸 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2018년 일본 아리타 백파선갤러리에 세워진 조선의 여성 도공 백파선(百婆仙·1560~1656)의 동상.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자기(瓷器).조선의 도자기와 채색 백자는 이미 15세기에 유명했고.중국과의 조공무역에 의존하던 조선은 백자를 서역에 수출해 국부를 쌓을 여력도.
게다가 임진왜란 당시 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다.상공업의 발달을 경계했다.
이제 유교와 결부된 조선백자를 볼 때 그 예술성에 감탄하면서도 그 그림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백자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조선뿐이었다.한데 우리는 몇몇 조선 도공의 이름을 알고 있다.
오늘날 사쓰마 도자기가 최고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은 바로 이 도공들 덕분이다.조선의 도자기와 채색 백자는 이미 15세기에 유명했고.
그가 구한말 한양을 방문했을 때 조선과 일본의 문화 격차가 심각했던 모양이다.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 있었다.